영화 초반, 밖에서는 이상적인 부부의 모습으로 나오지만, 교수인 남편 못지않게 변호사로서 자신의 일을 해내고 있음에도 그 시대 가부장적 분위기 하에 미묘하게 경직되어 보이는 마리안은 지나치게 남편 요한의 눈치를 보고, 요한은 자신의 사회적 성취에만 과도히 몰입한 채 외도까지도 합리화하며 변명합니다. 이후 외도로 인한 이별, 이혼을 겪으면서 이들은 자신들이 사회경제적 중산층의 결혼생활이 주는 안정감에 안주하는 대가로 결혼생활 동안 자신의 내면을 진지하게 들여다보거나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감정적 문맹’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됩니다.
결혼이 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경제적, 심리적, 관계적 안정감이 단지 결혼이라는 제도를 잘 유지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라고 과신했을 때, 우리는 애초에 결혼이라는 제도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던 관계의 경험들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위험을 안게 될지도 모릅니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움직이는 무형의 생명체와도 같은 관계를 결혼이라는 틀에 맞추려고 하는 순간 시들고 생기없어 지는 것은 아닐까요? 어쩌면 형태가 없는 관계라는 것을 애써서 결혼이라는 용기에 담으려는 인간의 시도는 시작부터 불가능한 것에 도전하는 것인지도요.
02. 함께 살아가는 동안, 나는 얼마나 성장했을까? 그 틀 안에서 멀어지는 것은 서로와의 관계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결혼 전에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묻던 사람도, 가정을 꾸리고 나면 오늘 해야 할 일과 가족에게 필요한 것을 먼저 헤아리게 됩니다. 아이가 생기면 자신을 돌아볼 시간과 여유는 더욱 귀해지지요. 하루를 빈틈없이 살아냈는데도 정작 오늘 나의 마음이 어땠는지는 알지 못하는 날들. 누군가의 배우자와 부모로 살아가는 동안, 그 역할을 맡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해서는 점점 모르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물론 함께 살고 아이를 돌보는 경험 속에서 비로소 배우게 되는 것들도 있을 것입니다. 다만 책임이 늘어나고 그것을 감당하는 데 익숙해지는 일을 곧 개인의 성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살필 기회가 계속 미뤄진다면, 가정이 안정을 찾아가는 동안 한 사람의 성장은 멈추거나 뒷걸음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결혼이 서로의 성장을 함께할 약속이라면, 그 안에는 각자가 자신을 들여다보고 변화할 수 있도록 시간과 자리를 내어주는 일도 포함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03. 결혼이라는 틀을 넘어, 사랑한다는 것 결혼이라는 틀에 갇히지 않았을 때에야 우리는 다시 정확하게 관계에 집중하고, 좀더 정확하게 서로를 사랑하게 될 수 있는 걸까요? 영화의 마지막 부분, 이혼 후에도 다시 만나서 밤을 보내던 마리안이 “한 번도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사랑받은 적 없는 것 같다”고 괴로워하자 요한은 우리 모두 완벽히 느끼거나 설명할 수 없어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하고 있는 거라고 그녀를 위로합니다. 애착을 갈구하는 연약하고 나약한 존재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불완전한 우리의 사랑으로나마 이렇게 서로를 보듬는 것. 그 모든 것을 겪고서야 두 사람은 좀더 정직한 관계의 지평에 다다른 듯 합니다.
결혼은 결국 사회가 만들어놓은 관계의 한 형태일 뿐입니다. 오늘도 결혼이라는 제도가 주는 안정감을 구하며 기꺼이 그 어려움도 함께 하려는 사람들을 위해서, 남녀관계만이 아닌, 관계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을 제한하지 않도록, 혹시나 형태에 갇혀 정확히 사랑하는 법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결혼이라는 제도의 형태는 지금보다 훨씬 다양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함께하려고 결심한 그 길에 동반될 어려움은 미리 염두에 둘 수 없지만, 그렇게 헤아릴 수 없는 미래야말로 사랑의 시작이지요. 모르는 내일이지요. 모르는 당신, 모르는 나 자신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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