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강력한 세속적 욕망으로 정변에 참여하고 권력의 중심에 선 한명회가 자기 정자에 붙인 이름에는, 욕망을 내려놓고 자연과 벗 삼아 지내겠다는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헌데 아이러니하게도 압구정의 명성은 중국 사신들에게까지 알려졌고, 사신의 방문을 둘러싼 일은 국왕과 그에 못지 않은 권력을 쥔 대신 한명회의 갈등으로 번지기도 했습니다. 세속을 떠나겠다는 이름의 정자가 여전히 ‘세속적 권세를 드러내는 공간’이었던 것입니다.
현대에 접어들면서 제3한강교(한남대교)와 경부고속도로 건설 등을 계기로 강남 개발이 본격화되고 압구정에도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섭니다. 오늘날에는 압구정 지역을 타고난 길지라고 평가하는 풍수적 해석도 따라붙습니다. 한강의 물(水)을 품은 입지에 꿩이 엎드린 모습이란 의미의 ‘복치형’ 명당이라고 말합니다. 재물이 모이는 길지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해석에 조선 초 권세가 한명회가 선택한 곳이라는 상징이 더해지면, 압구정은 오래전부터 부와 권세가 깃들도록 정해진 곳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실제 현실은 조금 다릅니다. <도시문헌학자 김시덕의 강남 : 우리는 왜 강남에 주목하는가>과 <우리는 어디서 살아야 하는가>에 따르면, 문헌상에서 드러나는 강남 개발은 지극히 안보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6.25 전쟁 시기 북한군이 밀려 내려올 때 남한은 너무 강북에 사람이 밀집해서 살았기 때문에 피해가 막심했습니다. 후퇴를 해도 피난민들이 한강을 건너느라 지체되면서 전략적으로 방어작전을 수행하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 시기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강남 개발의 요체는 일단 서울 강북 인구를 강남으로 분산하려는 목적이 컸다고 합니다. 1975년까지는 도로, 교량, 관청, 학교 등의 인프라를 놓으면서 강력하게 강북 인구를 강남으로 밀어내듯이 개발을 가속화하면서 지금의 강남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암만 권력이 집중된 군사 독재 정권 시기라고 해도 사람들이 원래 살던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주를 강제하기란 너무 어렵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곳은 원래 도시가 아닌 논밭이 깔린 농지인데다 상습 수해 지역이기도 했습니다. 사람이 살기 어렵다고 본 곳을 수십년의 축적된 도시계획과 개발특수라는 욕망을 건드리면서 이주를 성공시킨 것입니다.
인구와 기능을 분산하고 전쟁의 위협에도 대응하려던 국가 차원의 개발은, 결과적으로 오늘날 서울의 경제적·사회적 무게중심이 강남으로 옮겨가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거기에 한명회의 압구정 이야기와 풍수가들의 해석이 더해지면, 만들어진 입지가 마치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명당처럼 받아들여집니다.
이런 믿음은 금세 사라지지 않습니다. 말릉이 건업과 건강으로, 다시 남경으로 이어지면서 오랜 세월 왕도의 기억을 축적한 것처럼, 대한민국 강남의 신화에도 계속 믿고자 하는 사람의 믿음이 더해지고 욕망이 축적되었습니다. 그 도시 건설의 처음 목적이 무엇이고 그 과정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든지 간에 말입니다. 물론 그것이 앞으로의 번영까지 영원히 보장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3. 명당을 완성하는 것은 무엇일까? 가령 우리가 새로운 거점 도시를 탄생시키고자 한다면 거기에도 사람들이 마음을 걸 만한 이야기가 필요하겠지요. 또한 공동체의 생존 혹은 성장에 필수적인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국가의 대계획이 꾸준히 수십 년간 이어져야 합니다. 실제로 그곳에서 삶이 나아지는 경험이 쌓이고, 그곳이 좋은 자리임을 증언하는 목소리가 축적되어야 합니다. 그런 현실과 믿음이 함께 이른바 명당을 만드는 셈입니다.
가톨릭 신자인 저도 이사할 때 밥솥에 쌀을 넣고 이사 전날 가져다 놓는 의식을 합니다. 정확한 유래는 모르고 어머니가 하라고 시키셔서 따르는 겁니다. 아마도 새로운 삶터에 ‘좋은 기운’을 불어넣고자 하는 의식일 겁니다.
이런 관습이 쓸데없는 미신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 개인의 일에서도 ‘믿고자 하는 마음’은 중요한 동기 부여가 됩니다. 하물며 공동체 전반이 오랜 세월 축적하여 온, 믿고자 하는 마음을 일시에 바꾸거나 부술 수는 없습니다. 그 마음을 돌리고 새로운 비전을 품게 하는 일에는 오랜 세월 축적된 계획과 실행, 무엇보다 그 사람들을 끌어당길 욕망의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대한민국의 오늘날, 인구가 줄어드는 시대에도 사람들이 원하는 곳의 집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하고, 특정 지역의 집값은 연일 오릅니다. 언뜻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입니다. 하지만 전국에 집이 얼마나 있느냐와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곳에 집이 얼마나 있느냐는 다른 문제입니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다주택 투기를 억제한다는 방책을 내놓고, 공급을 늘려 수요를 충족시키는 방식도 씁니다. 그 효과를 따져야 하겠지만, 주택의 숫자를 조정하는 것만으로 사람들이 원하는 장소까지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절대로 강남을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 의식이 문제라고 보기도 합니다. 그 배경에는 상급지로 이전하는 ‘부동산 보유’와 ‘재건축’이 대한민국 중산층 재테크의 기본 공식처럼 자리 잡았다는 현실이 있습니다. 그런 대중의 믿음은 누가 보기에 어리석든 영리하든 쉽사리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억압하고 누르는 식으로 만은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새로운 곳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국가 운영에 필요한 이유를 갖춘 정책 실행과 그곳에서 살아갈 만한 이야기를 함께 축적해야 합니다. 그래야 오래 지속할 수 있고, 사람들이 자기 삶을 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산 북항 친수공원 수로에 들어온 흑상어 ‘부캉이’ 하나로도 전국이 떠들썩합니다. 그 사건이 이야깃거리가 되고 무수한 사람들의 마음에 깃들었기 때문입니다. 상어 한 마리가 도시의 삶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사람들이 그 장소를 기억하고 찾아가게 만드는 계기는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집을 고를 때에도, 국가가 새로운 도시를 건설할 때에도 어쩌면 거기에 머물러 살 이유에는 ‘이야기’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 아닐까 합니다.
제가 PD 시절에 장충동 족발을 취재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저녁 무렵 가득 메운 손님들 중에 술이 거나하게 취한 중년 남자 한 명의 인터뷰를 땄습니다. 제 기억에 그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매주 금요일이면 딱 이 자리에 앉아서 족발에 소주를 땁니다. 왜냐? 돌아가신 울 아버지가 딱 이 자리에 앉아서 족발에 소주 한 고뿌 드셨기 때문이죠~ 저도 이 자리에 앉아서 족발에 소주를 먹습니다. 아버지를 그리면서… 크으으… 울 아버지 한 잔, 나 한 잔. 그리고 울 아버지가 불렀던 그 노래를 부릅니다.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