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결혼에서 무엇을 잃고, 무엇을 쌓아가는가? Editor's Note
결혼식 소식이 부쩍 잦아지는 10월입니다. 10월 OFF LETTER는 ‘결혼’을 이야기합니다.
결혼은 생각해보면 이상한 거래입니다.
돈은 더 많이 들고, 시간은 줄어듭니다. 혼자라면 하지 않아도 될 집안일이 생기고, 누군가의 기분과 일정을 신경 써야 합니다. 아이가 생기면 책임은 훨씬 더 커집니다. 자유만 놓고 보면 결혼은 분명 손해 보는 선택처럼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결혼을 이야기할 때 사랑보다 먼저 등장하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집값, 연봉, 자산, 육아비, 커리어 같은 것들입니다. 누군가와 평생을 함께한다는 낭만적인 약속 앞에 어느 순간 손익계산서가 놓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망설이는 사람들은 늘어나는 반면 다른 사람의 연애와 결혼을 지켜보는 일에는 유난히 열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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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손해 보는 장사일까?
우리는 결혼에서 무엇을 잃고, 무엇을 쌓아가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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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켜도, OTT를 봐도, 유튜브 쇼츠를 넘겨도 ‘연프’의 홍수입니다. 연프는 짝을 찾는 과정을 보여주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줄임말입니다. 한국뿐 아니라 일본과 동아시아 전역에서 인기가 상당합니다. 혼인율과 출산율이 유독 낮아지는 곳에서 오히려 연프가 큰 인기를 끄는 현상은 꽤 흥미롭습니다.
높은 물가와 주거비,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싱글 남녀들은 결혼해 책임의 무게를 늘리느니 자유롭게 혼자 사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연프는 쉽게 엄두 내지 못하는 연애와 결혼을 대리 체험하게 하거나, 실패 확률을 줄이기 위한 일종의 과외 수업인지도 모릅니다.
최근 제가 본 연프 가운데 특히 흥미로웠던 두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SBS의 〈합숙맞선〉과 넷플릭스의 일본 연애 예능 〈불량연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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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숙맞선·불량 연애, 결혼의 조건과 관계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는 연애 리얼리티, 2026·2025, SBS·Netfli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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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숙맞선〉은 결혼의 현실적인 면을 꽤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다른 연프와 달리 엄마가 자녀와 함께 배우자를 고르는 과정에 참여합니다. 상대의 연봉은 얼마인지, 아이는 언제 낳을 생각인지 같은 질문이 자연스럽게 오갑니다. 좋은 M&A 대상을 찾기 위한 실사처럼 결혼 상대의 조건을 꼼꼼히 따집니다.
정반대에 가까운 프로그램이 〈불량연애〉입니다. 출연자들은 이른바 ‘결혼 시장의 좋은 스펙’을 가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거친 과거를 겪었거나 불안정한 가정환경에서 자랐고, 세상과 부딪히고 깨지며 살아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은 학력이나 재산, 능력이나 집안보다 그 사람이 품은 상처와 외로움, 친구에 대한 의리,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더 가까이 들여다봅니다. 보고 있으면 이들이 연애 상대나 결혼 상대를 찾기 전에 먼저 자신의 삶부터 복원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 복원의 출발점에는 어쩌면 ‘가족’이라는 감각이 있을 겁니다. 그래서 〈불량연애〉는 짝을 찾는 프로그램이라기보다 서로 믿고 의지할 사람을 찾아가며 다시 가족을 배워가는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두 프로그램은 전혀 달라 보이지만 오래전부터 인류 사회에 존재해온 ‘결혼’이라는 제도의 두 얼굴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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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결혼은 언제부터 사랑이 되었을까?
오늘날 우리는 사랑하는 두 사람이 서로를 선택해 결혼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깁니다. 그러나 인류의 긴 역사에서 결혼을 오로지 연애 감정과 개인의 선택으로 결정하게 된 기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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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결혼, 돈과 신분을 위해 혼인을 협상하는 두 가문을 그린 작품, 윌리엄 호가스 1743, 런던 내셔널 갤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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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전의 결혼에는 재산과 상속, 혈통과 가문, 노동과 돌봄,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는 여러 기능이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물론 그 시대의 결혼에 사랑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개인의 감정보다 가족과 공동체의 이해관계가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결혼이 종교와 관습을 통해 신성한 의례가 되고, ‘관혼상제’라는 말처럼 삶의 중요한 통과의례로 자리 잡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근대 이후 개인주의와 자유주의가 확산되면서 결혼은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변합니다. 남녀가 만나 좋아하고, 신뢰를 쌓고, 스스로 함께 살아가겠다고 결정하는 일이 결혼을 정당화하는 중요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2. 좋은 사람을 고르는 일, 함께 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일 그 과도기의 결혼관을 흥미롭게 보여주는 작품이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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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34장 삽화, 다아시가 엘리자베스에게 청혼하는 장면, 휴 톰슨 1894, 릴리 도서관·인디애나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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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초 영국의 베넷 집안에는 다섯 딸이 있습니다. 당시 상속 제도 때문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 집안의 재산은 먼 친척에게 넘어갑니다. 그래서 베넷 부인은 딸들을 조건 좋고 부유한 남자와 결혼시키는 일에 온 신경을 씁니다.
둘째 딸 엘리자베스는 영리하고 독립적이며 사람을 보는 자신의 눈을 믿는 여성입니다. 그녀는 부유한 대지주 다아시를 만나지만 그의 냉담하고 거만한 태도에 강한 반감을 갖습니다. ‘오만’과 ‘편견’이라는 제목처럼 두 사람은 서로를 오해하고 갈등하는 과정을 겪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엘리자베스는 누구보다 사람을 잘 본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편견을 깨닫게 됩니다. 다아시 역시 자기 내면에 뿌리 박힌 계급의식과 오만함을 돌아보게 됩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맞는 사람이 되기 위해 스스로 고쳐가면서 비로소 사랑과 결혼에 이릅니다. 결혼은 좋은 사람을 고르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 사람과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3. 결혼의 회계 장부 재미 삼아 결혼의 회계 장부를 한번 펼쳐보겠습니다.
결혼에는 분명 비용이 들어갑니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 시간과 노동, 돈을 씁니다. 집안일을 하고, 아이를 돌보고,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의 일정을 맞춥니다. 혼자 살았다면 하지 않아도 될 수많은 수고와 비용이 생깁니다. 부채도 있습니다. 주택대출처럼 눈에 보이는 부채가 있는가 하면 육아와 부모 부양의 부담, 오래 말하지 못한 서운함처럼 장부에 기록되지 않는 부채도 있습니다.
결혼 생활도 오래 안정적으로 꾸리다 보면 점차 유형자산이 쌓입니다. 금융자산과 부동산 같은 것들 말입니다. 그런데 그와 더불어 재무제표에 기록되지 않는 무형자산도 함께 쌓입니다. 신뢰와 친밀감, 함께 만든 추억, 서로에 대한 이해, 부부의 유대와 자녀와의 관계입니다.
가령 배우자의 이야기를 매일 30분씩 들어주고 공감하는 일은 그 시간에 할 수 있었던 다른 일을 포기한다는 점에서는 비용입니다. 그러나 그 30분이 하루 이틀이 아니라 10년, 20년 쌓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그 시간은 흔들리지 않는 신뢰라는 무형자산이 됩니다.
회계에서 비용은 대개 지출되는 순간 사라집니다. 하지만 결혼에서는 조금 다릅니다. 배우자에게 건넨 시간과 노력, 때로는 희생과 양보까지도 관계 안에서는 신뢰와 추억, 이해와 유대로 남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면 두 사람 사이에는 일종의 ‘관계의 순자산’이 쌓여갑니다.
4. 함께 산다는 것은 무엇을 남기는가 제가 어린 시절 읽었던, 하지만 지금까지도 줄거리를 선명하게 기억하는 동화가 한 권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주로 〈사랑의 가족〉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독일 아동문학가 아그네스 자퍼의 〈페플링 씨 가족〉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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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e Familie Pfäffling, 페플링 가족의 삶을 그린 독일 아동문학 작품의 판본, 아그네스 자퍼 1936, D. Gundert Verla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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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교사 페플링 씨는 넉넉하지 못한 수입으로 아내와 일곱 아이를 키웁니다. 가족은 셋집에 살고 형편도 빠듯합니다. 그런데 일곱 아이들이 벌이는 소동과 음악, 웃음이 집 안을 가득 채웁니다. 부족한 것은 많은데 이상하게 행복은 부족해 보이지 않는 가족입니다.
이 동화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아이는 프리더입니다. 프리더는 남다른 음악적 재능을 가졌지만 음악에 지나치게 몰입한 나머지 숙제를 미루고 가족의 말도 듣지 않고 심지어 아버지의 말을 거역하기도 합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재능을 억지로 꺾으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한 가지를 가르칩니다. 아무리 사랑하고 잘하는 일이라도 그것 때문에 다른 사람, 특히 가족과 함께 살아갈 수 없다면 결코 좋은 일이 될 수 없다는 것을요.
결국 프리더는 그토록 집착할 정도로 좋아하던 바이올린을 스스로 아버지에게 맡깁니다. 시간이 흐른 뒤 그는 자신이 연습을 통해서 드디어 절제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합니다. 아버지는 프리더가 자신의 천재성에만 심취하지 않고 가족을 위해 스스로를 절제할 줄 아는 아이가 된 것을 기뻐합니다.
마침 그날, 설립이 미뤄졌던 대도시의 음악학교가 문을 열게 되었고 페플링 씨가 교장으로 추천되었다는 소식이 도착합니다. 아버지는 장에 보관해 두었던 바이올린을 프리더에게 돌려주며 가족의 축제 같은 하루를 기념하는 연주를 부탁합니다.
경제적 궁핍과 싸우고, 재능이 빚어낸 갈등까지 겪으면서도 페플링 씨 가족은 ‘사랑의 가족으로 함께 산다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걸 보여줍니다.
서로 타인이었던 사람들이 만나 결혼하고 가족을 일구는 과정은 결국 타인을 위해 자신이 살아온 삶의 규칙과 습관, 때로는 생각까지 고치고 조율하는 과정인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행복만을 좇기보다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과정 말입니다.
물론 그 길은 예식장의 버진로드처럼 마냥 화려한 꽃길만은 아닐 겁니다. 때로는 참고, 양보하고, 내가 옳다고 믿었던 생각과 익숙했던 습관을 고통스럽더라도 바꿔야 합니다. 때로는 손해를 감수하듯 자신의 몫을 조금씩 내어주며 살아가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충분히 쌓이고 나면 그 비용과 손실 가운데 많은 것들이 신뢰와 이해, 위로와 안식, 추억과 가족의 역사라는 위대한 유산으로 남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 인생이 누군가에게 희생해온 역사라기 보다, 그 누군가 덕분에 조금 덜 힘들게 살아온 시간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지도 모릅니다.
조지 엘리엇은 〈미들마치〉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서로의 삶을 조금 덜 힘들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이 글을 쓰는 지금, 저는 며칠 전 첫 아이를 출산한 아내 옆에 앉아 있습니다.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부담과 책임감, 설렘과 기대가 한꺼번에 밀려옵니다. 점점 더 ‘나의 삶’이 아니라 ‘우리의 삶’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앞으로 우리 세 가족이 서로의 삶을 얼마나 덜 힘들게 해줄 수 있을지, 이제 그 고단하겠지만 흥미진진한 경영을 시작해보려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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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보이는 수치가 아닌, 무엇을 새롭게 측정할 수 있는지의 관점에서
시장을 바라보세요.
결혼에도 손익계산서가 있다면 어떨까요? 흥미롭게도 이미 그런 계산을 도와주는 비즈니스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미국의 HelloPrenup은 결혼 전 자산과 부채, 재산 분할 조건을 정리하고, Honeydue는 부부의 계좌와 지출을 함께 관리하게 합니다. Fair Play는 돈으로 잡히지 않는 집안일과 돌봄, 계획하고 기억하는 수고까지 눈에 보이게 만듭니다.
이 서비스들의 공통점은 이전에는 막연하게 느끼던 것을 측정하고 관리할 수 있는 대상으로 바꿨다는 것입니다.
- 아직 숫자로 표현되지 않았지만, 결혼 생활에서 사람들이 분명 비용을 지불하고 있거나 자산으로 쌓아가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 우리 시장에도 소비자가 분명 비용을 지불하고 있거나 가치를 느끼지만, 아직 숫자로 표현되지 않은 것은 없을까요?
- 지금까지 측정하지 않았던 것을 새롭게 측정할 수 있다면, 새로운 시장이 보이기 시작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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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OFF-010. 05 OCT 20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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